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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96년 9월 2일 (26세)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現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가족
부모님, 여동생
애완묘 유미
신체
178cm, O형
MBTI
INFJ
병역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2019년 7월 25일 ~ 2021년 5월 11일
‘구독자 700만’ 기타리스트 정성하 “꾸준함이 재능을 이겨요”
- 2023. 2. 4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고 하면 기타리스트 정성하(27)는 샐쭉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천재 중 한 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천재라고 부른 것 때문에 말이랍니다.
“천재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이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요즘 일찍 기타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제가 어렸을 때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제 재능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해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유튜브에 연주 영상 1300개를 올렸으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정성하는 2006년 열 살 때 그의 기타 연주 동영상을 아버지가 유튜브에 올리면서 ‘유튜브 스타’에 등극했다. 비공식이지만 국내에서 최초 유튜브 구독자 100만명 돌파, 누적 조회수 1억 돌파의 기록을 세운 건 K팝 스타가 아닌 꼬마 시절의 그였다. 자기 몸집 만한 기타를 껴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 비틀스의 ‘렛잇비’, 파헬벨의 캐논 같은 곡을 현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폭풍 클릭을 불렀다.
재능을 알아본 거장들은 그를 세계무대로 이끌었다. 독일 기타리스트 울리 뵈게르샤우젠은 멘토를 자처하며 공연을 주선했고 앨범을 녹음할 수 있게 자신의 녹음실을 내줬다. 프랑스 기타리스트 미셸 오몽은 ‘성하의 왈츠’라는 곡을 작곡해 선물하는가 하면 미국 기타리스트 트레이스 번디와는 미국 5개 도시 투어를 함께하는 등 종종 같이 무대에 서는 사이가 됐다. 12세 때 첫 독주회를 시작으로 독일 태국 미국 핀란드 등 해외 공연이 이어졌답니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프로 연주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택했다. 지금까지 9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고 유튜브 구독자 700만명, 조회수 20억이라는 연주자로서는 전례 없는 기록을 써가고 있다. 제이슨 므라즈, 아이유, 지드래곤, 2NE1, 양희은 등과 협연했다. 지난 연말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 ‘드리밍’을 펴냈으며 방송 중인 음악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인터미션’(JTBC)에서 임재범 하동균 등과 화음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홈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기타를 시작할 때 기억이 나나요?
“기타를 처음 잡은 건 세 살 때였고, 아버지한테 기타를 배우고 나서 세뱃돈을 모아 첫 번째 기타를 샀어요. 쇠줄을 맨 손가락으로 튕기면 물집이 잡히고 아프거든요.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은 있는데 그래서 힘들고 괴로웠다는 기억은 없어요. 그냥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계속 연습했던 것 같아요.”라고 전했답니다.
-기타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줄을 튕기면서 연주하는 기타라는 악기 자체가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는 기타가 운명이었던 듯하다. 어쿠스틱 기타를 친다고 하면 대개 노래 반주를 떠올리는데, 그는 그것과 달리 멜로디와 화음, 리듬을 기타 한 대로 표현하는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다. 음악을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건 초등학생 때 몇 개월 다닌 클래식 기타 학원과 스무 살 때 입학한 서울재즈아카데미 1년이 전부로, 사실상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다. 11세쯤에는 작곡을 시작했다. 그는 팝송 재즈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 라이브 방송에서 신청곡이 들어오면 처음 듣는 곡도 즉흥적으로 기타로 편곡해 연주한다. 곡을 듣고 악보로 옮기는 채보를 거치지 않고 듣고 따라 치고 외워버리는 것. 문외한이 보기엔 진기명기에 가까운데 “일찍부터 훈련이 돼서 그렇다”고 담담하게 말했답니다.
-누구나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죠. 고졸 검정고시를 본 후에 대학 대신 서울재즈아카데미를 택했어요.
“요즘은 옛날만큼 대학 진학이 필수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미 하는 일이 있었고 그걸 계속하려면 학교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이른 나이에 진로가 정해졌는데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꿈은 없었나요.
“기타 말고 다른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이미 프로 기타리스트가 꿈이었거든요. 제가 정말 기타에 미쳐서 초등학교 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영어 학습지 숙제를 했어요. 부모님이 음악과 공부를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기타를 1분이라도 더 치려고 공부를 미리 끝냈던 거예요.”
-짧은 학창 시절에 대한 아쉬움은요?
“있죠. 중학교 때 정말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가끔 생각이 들긴 해요. 궁금하고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그 기간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거든요. 한 달에 두세 번씩 해외 투어를 하고 매년 앨범을 냈어요. 어떤 선택이든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전해답니다.
-음악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건 ‘비긴어게인’이 처음인 거죠? 늦은 감이 있는데요.
“제가 세션이 아니라 프론트맨으로 무대 가운데 서서 제 연주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기회를 주셔서 2, 3주 만에 거의 20곡을 편곡해서 합주하고 촬영을 했어요. 좋은 경험이었고 재밌게 했어요.”
-웬만한 음악인은 넘보기 힘든 경력을 쌓아왔는데 성하씨를 ‘비긴어게인’에서 처음 본 분들도 많은 것 같답니다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보컬이 있는 음악을 선호하기 때문에 제 구독자의 95% 이상이 해외 팬분들이에요. 저도 국내보다 해외 공연 빈도가 훨씬 높고요. 인스트루멘탈(악기 연주만 있는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그 매력을 모르신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많은 분들이 인스트루멘탈을 더 들어주시지 않을까요.”
-책을 낸 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서울재즈아카데미 동기들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제 어머니뻘 되는 분, 학교 중퇴하고 온 10대 친구들, 30~4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였어요. 진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고 그것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가 됐든 그 꿈에 뛰어드는 것 같아요. 생업을 그만두고 온 분들은 진짜 큰 결심을 한 건데, 무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늦게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꿈 외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을지라도 온전한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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