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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용호 나이 프로필 이용호 사망원인 사인 부인 아내 가족

by ㅁㄴㅇㄹhh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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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리용호 前외무상 지난해 처형한 듯" 요미우리
- 2023. 1. 4

 북한의 리용호 전 외무상이 지난해 처형된 모양이라고 4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답니다.

신문은 북한 내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이 같이 전했다. 소식통들은 리 전 외무상의 숙청 시기를 "작년 여름부터 가을 무렵"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신문은 "리 전 외무상의 처형 전후 북한 외무성 관계자 4~5명도 잇따라 처형됐다는 정보도 있다"고 전했답니다.

숙청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리 전 외무상을 포함한 복수의 외교관들이 주영국 북한 대사관 근무 경험자들이다.

신문은 "해당 대사관이 관계한 어떤 문제가 (처형) 배경의 하나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요미우리는 주영국 북한 대사관에서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2016년 한국으로 망명해 국제사회가 주목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태 의원은 주영국 북한 대사관의 공사였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처형된 외무성 관계자와 가까운 외교관 일부는 자신도 숙청될 것이라는 우려를 주변에 토로하는 등 동요가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재외 외교관에 대한 감시를 강요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국외 근무 외교관들이 동요해 망명에 나서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답니다.

주영국 대사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을 역임한 리 전 외무상은 미국통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와 비핵화 협상에 임하고, 2019년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 배석한 바 있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2016년 외무상 취임이 확인됐으며, 2020년 퇴임도 밝혀진 바 있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생일
1956년 7월 10일 (66세)

고향 출생지
평양시
학력
남산고등학교 (졸업)
평양외국어대학 (학사)

지난 1956년 평양에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지낸 리명제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양외국어대학 졸업 이후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답니다.

1979년 짐바브웨 주재 대사관 3등 서기관에 임명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1985년 스웨덴 주재 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옮겼답니다.

지난 1988년, 외무성 국제기구국 2과 담당 지도원이 되었으며 1990년, 유엔에서 군축양성가 프로그램에 북한 외교관도 한명 보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국제기구국 산하 군축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가 자청해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6개월간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귀국했다고 한답니다.


이후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가 터지자 NPT 탈퇴와 준전시 상태 선언을 통한 강경외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차 북핵위기가 무사히 넘어가면서 1995년 외무성 참사에 임명되었다. 2000년 8월, 백남순 외무상의 홍콩 방문에 동행했으며 2000년 10월, 조명록의 방미도 수행하였답니다.

2001년 5월 17일, 하노이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북측 단장으로 참여했고, 2001년 9월,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에 참석하여 연설하였다. 북한과 영국의 수교 이후 2003년 8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초대 주 영국 북한 대사로 임명되었답니다.

태영호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이라크 전쟁으로 불안해진 김정일이 영국 측의 의사를 파악하여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탐문하고, 1차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004년 2월 27일에는 아일랜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봉정하면서 아일랜드 대사도 겸하였다. 영국 부임 후 2005년에 외교적 필요 때문에 대사관 직원들과 같이 골프를 배웠는데 하필이면 남한 골퍼에게 배운데다가 연합뉴스에서 그가 리명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도한 것 때문에 김정일이 남조선 언론이 리용호가 리명제 아들인것은 어떻게 알았냐고 노발대발해서 다신 안하겠다고 싹삭 빌었다고 한답니다.

지난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목적을 달성한 그는 2007년 2월, 자성남에게 영국 대사 및 아일랜드 대사 자리를 물려주고 귀국했답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2010년 9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외무성 부상에 임명되었고,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2011년 7월과 9월, 제1,2차 남북비핵화 회담에 참석했답니다.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각종 외교업무를 보다가 2016년 5월, 전임 외무상 리수용이 국제부장 및 정치국 위원으로 영전하면서 후임 외무상에 임명, 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새로 설치된 국무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답니다

지난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7기 2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2018년 8월, 김영춘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런데 어쩌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철만 장의위원회에서는 탈락했다. 2019년 3월에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외무상 및 국무위원에 유임되면서 리수용과 더불어 북한외교의 투톱 중 한 사람으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으며 2019년 6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3주년 중앙보고대회에도 참가하면서 북한외교의 투톱 중 한 사람이랍니다.

하노이 회담의 실패, 남북관계의 재경색 이후 결국 2019년 12월, 조선로동당 7기 5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에서 소환, 외무상에서 해임되었으며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이 새 외무상에 임명되었다. 리선권은 외교관 경력이 전무한 군 출신 인물이라 굉장히 이례적인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2020년 4월, 최고인민회의 14기 3차 회의에서 리수용과 함께 국무위원에서 소환된 것이 북한 매체에서의 마지막 언급이었답니다.


한때 김정은 외교의 상징으로 잘 나가던 때와 달리 2022년까지도 두문불출하고 있다. 리수용이야 나이가 많아서 은퇴했다고 쳐도 이 양반은 김정은의 외교정책 변화로 인한 용도 폐기나 신임 상실로 인한 경질이 분명했었다. 그러나 2022년 3월 제1차 선전부문강습회에서 그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되었답니다

리용호의 아버지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지낸 리명재이고 어머니는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리용호의 어머니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고 하는데, 그 일화가 충격적이랍니다.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의 수기 '김정일 로열패밀리'에 보다 자세한 내용이 서술돼 있다. 리명재는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로, 김정일이 자기 측근들에게 베푸는 술 파티에 부름을 받는 멤버 중에서 핵심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리명재의 아내는 남편이 만취해서 집에 들어와 술 주정을 부리는 것을 들어보며 이 술 파티가 문란하고 난잡하게 열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돼 김일성에게 이를 바로 잡아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발신자를 찾지 못 하게 하려고 일부러 편지는 왼손으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당시에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보고란 보고는 모두 김정일을 거치고 간다는 걸 몰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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