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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선 프로필 해동건설회장 나이 부인 아내 윤경자 윤한봉,동생 박기순

by ㅁㄴㅇㄹhh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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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투사'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 별세
- 2022. 12. 24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시대의 풍운아'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이 24일 오전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0세입니다.


광주 서중·일고를 졸업한 박 회장은 1972년 전남대에 입학해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한 뒤 유신에 반대하며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11개월 동안 수감됐습니다.

박 회장은 고 윤한봉 선생의 권유를 받아들여 1976년 고향 출생지인 전남 보성으로 내려가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농민운동을 시작했답니다.

고인은 그해 11월 함평군 단위농협이 농민들에게 전년보다 비싼 값에 고구마를 전량 수매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함평고구마 투쟁에 농민운동가들과 함께 했습니다.

박 회장은 전남대 3학년 때 들불야학을 창립해 노동운동을 하던 여동생 고 박기순 열사가 1978년 12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박 회장은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의해 예비검속돼 상무대 군 영창에 수감됐던 5·18유공자다. 1982년 2월 박 회장의 여동생 박기순과 5·18 시민군 대변인 고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랍니다.

박 회장의 형이 한겨레신문사 기자였던 박화강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다. 부인 윤경자씨는 '5·18 마지막 수배자'였던 고 윤한봉 선생의 여동생이랍니다

1970년대 후반 고교 동문과 함께 보성건설을 창업했던 박 회장은 이후 사업가의 길로 나섰답니다.

박 회장은 민청학련 사건을 통해 알게된 전국의 민주화운동 동지들을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과 만났다. 이 인연으로 박 회장은 2002년 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도와 '광주 노풍의 주역'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박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윤경자씨와 아들 찬(해동건설 대표), 지웅씨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광주시 서구 천지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26일 오전 9시40분, 장지는 국립5·18민주묘지입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노래?

재야운동가 백기완이 작사, 시인 황석영이 개사를 했고,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학교 학생 김종률이 희생자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서 1982년 작곡한 민중가요다. 이 노래는 명실상부히 한국 진보/좌파를 대표하는 민중가요로 인식된다. 그러하기에 이 노래 하나만큼은 정파를 가리지 않고 함께 부른다. 주로 민중의례 때 많이 불린답니다.


명실상부한 5.18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노래가 만들어진 1980년대에는 당연히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불법 테이프'를 통해 퍼졌지만, 1991년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3집 음반에서 처음으로 정식 녹음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진보 진영 측이 주도하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대중 집회에서도 많이 불리고 있다. 또한 광주를 대표하는 노래로 인식된다. 그러한 영향으로 광주를 연고지로 있는 프로축구단 광주 FC의 서포팅곡으로 포함되었답니다.

백기완 시인의 시 '묏비나리'[3]를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과 1978년 겨울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를 통해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그 뒤 1982년 제작된 음반 '넋풀이 -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민주화 운동은 물론 진보 계열의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 집회에서 널리 불렸다. 집회 시작 시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할 때 그 일부로서 포함된 것. 국민의례 때 '애국가'가 불리는 것처럼 이 곡이 불렸다. 이를 통해 1980년 광주가 사회 운동 세력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답니다.

표준어 개정안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주로 표기하며, '임한가' 혹은 '임행'이라는 별칭 혹은 준말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2016년 5월 16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작곡가 김종률 씨가 "작곡 당시 고귀하고 숭고한 느낌의 '님'으로 정했다. 한용운 선생의 시 '님의 침묵'도 참고했다. 시적 표현으로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은 "예술작품은 맞춤법이 틀려도 '시적 허용'이 가능하다. 노래 제목은 예술작품이고, 작곡자가 '님'으로 정했다면 그대로 인정하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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