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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생일
1958년 10월 23일 (64세)
고향 출생지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현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재임기간
제67대 법무부장관
2020년 1월 2일 ~ 2021년 1월 27일
형제자매 가족관계
2남 2녀 중 셋째
배우자 남편
서성환
자녀
아들 서재휘, 딸 서재현, 서재영
학력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 석사)
건국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과정 수료)
종교
불교
신체
162cm
추미애는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고 후임으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후보자로 지명함에 따라 퇴진을 앞두고 있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 결정을 주도했으나 법원의 제동이 걸리면서 깊은 좌절을 맛봤답니다.
검찰개혁을 앞장서 이끌었다는 점을 자산으로 삼아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1958년 10월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여성으로 첫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랍니다.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면서 희망돼지저금통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로 불리기도 했다.
민주당 분당 사태 당시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을 맞아 총선에서 낙선했다.
다음 총선에서 당선돼 기사회생한 뒤 ‘여성 첫 지역구 5선’ 고지에 오르면서 국회에 재입성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면서 대구경북(TK) 출신의 첫 여성 당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집권여당 대표도 지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후임자로 임명되면서 검찰·사법개혁 과제를 넘겨받았다.
직설화법과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원칙과 소신’을 최고의 정치덕목으로 꼽는다. ‘강기(剛氣)로 똘똘 뭉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잔다르크를 빗댄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붙어 있답니다.
◆ 경력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했다.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1989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199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일했답니다.
1993년 김제시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가 됐다.
199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7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로 일했습니다.
1997년 15대 대선 김대중 후보 ‘유세단장’으로 활동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제1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습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개혁추진위원회 제3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를 다시 지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으로 재임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 특보도 맡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1년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지냈습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상임중앙위원을 역임했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4년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객원연구원을 맡았다.
2006년부터 2012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임했다.
2006년 법무법인 아주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제17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국회에 다시 입성했다.
2008년 민주당 당무위원을 맡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세계한인민주회의 부의장으로 일했다.
2011년 민주통합당 당무위원을 맡았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4선 의원이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경선준비기획단 단장으로 일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18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년 민주통합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했다.
2013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6·4지방선거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 2016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일했다.
2016년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소녀상의눈물운동본부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면서 5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2016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았답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서울광진구을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재임하고 있다.
2016년 8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최고위원(당대표)을 맡았다.
2016년부터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6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부터 세계한인민주회의 의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박근혜대통령퇴진 국민주권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더불어민주당 호남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2017년 한국·러시아의원외교협의회 회장으로 일했다.
2018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은 뒤 2020년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 학력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과정에 수학했습니다.
2004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답니다.
◆ 가족관계
2남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남편은 변호사 서성환씨로 전라북도 정읍에서 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자녀로는 딸 서재현씨와 서재영씨, 아들 서재휘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서재현씨는 2018년 6월 주성훈씨와 결혼했다. 차녀 서재영씨는 2020년 현재 대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 상훈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여성권익디딤돌’을 수상했다.
1999년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됐답니다.
2012년 국회도서관에서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로부터 안중근 평화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1월 한양대학교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2018년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윤달선 한양대 석좌교수와 함께 수상했다.
◆ 평가
타협이 없다고 해서 주변에서 ‘강기(剛氣)로 똘똘 뭉쳤다'는 말을 듣는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유세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치적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5선 의원이지만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의원이 드문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추미애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계파정치를 하지 않아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 8월27일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계파의 곁불조차 쬐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생을 21년 동안 의롭고 외롭게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미애는 당권 경쟁에서 친문재인계로 분류됐지만 친문 의원들조차 “사실 추 대표가 언제부터 친문이었냐”고 했다고 한다. 추미애 스스로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라고 인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 때문이랍니다.
다만 추미애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18일 서울 종로 거리유세에서 “내가 잘못하면 내 멱살을 잡고 흔들 ‘대찬 여자’ 추미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장관 제안을 두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관은 추계 추씨다. 혈액형은 B형, 키는 160cm랍니다.
부모가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어려서 겨우 세살의 나이에 외가집으로 보내졌다.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집이 빈털터리가 된 데다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나자 넉넉치 않았던 가정형편이 더 버거워졌기 때문이랍니다.
어린 시절 신발이 없어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다니다 셋방 마당 우물에 빠졌다. 당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끝에 ‘정의와 소신을 지키는 삶’을 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대학교 4학년 시절 학교 정문 출입을 검문하던 계엄군에게 '왜 내 학교를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대들었던 적이 있다. 추미애는 2019년 2월 SNS에서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판사 시절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에 밤새 울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추미애를 등용하면서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며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일했을 때 인수위원 25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다.
모범생이었던 추미애는 학창시절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흉본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자 바로 교실을 나왔다.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책가방에 책을 넣고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말 처음 사법고시 1차를 통과했고 고시공부를 위해 해인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동기동창이자 이후 남편이 된 서성환씨로부터 편지를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가 2차시험에 낙방했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영남 출신인 추미애와 달리 남편은 호남 출신인 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점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한다. 서성환씨는 추미애보다 3년 늦게 사법시헙에 합격한 뒤 전라남도 정읍에서 무료변론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바쁜 일정을 보낼 때도 휴대전화를 통해 자식들과 꼬박꼬박 연락하는 등 가족에게 자상한 편으로 알려졌답니다.
딸 서재현씨와 서재영씨는 추미애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알려졌다. 추미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으로 역풍을 맞아 삼보일배에 나선 것을 보고 딸들이 울었다는 일화도 있다.
불교계의 성철 스님과 두 차례 만났다.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천 배를 하고 오라”며 조건을 걸었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천 배를 해내 스님을 뵈었다고 한답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가 좌우명이다.
종교는 불교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와 김구 선생이다. 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 여행이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삼국지’를 꼽는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내가 만일’, ‘만남’ 등이랍니다.
건강을 위해 반신욕을 가끔 한다고 알려졌다. ‘밥심으로 버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먹는다.
2003년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감 1위로 꼽혔다.
잠재적 대선주자로도 거명되지만 그를 따르는 거대 계파나 확고한 지지층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8년 11월 여야 5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과 매달 둘째주 금요일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국회 신뢰 회복을 논의하는 '이금회' 모임을 정례화했는데 추미애도 구성원에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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